글 · 2026.10.23

정답은 끝났다. 답은 대화에 있다.

2019년 사람이 토론에서 기계를 이긴 날과 2026년 말로 AI 에게 일을 시키는 아침 사이, 달라지지 않은 것 하나.

2019년 2월, 샌프란시스코. 세계 토론 무대에서 자주 만난 친구가 IBM 의 토론 AI 와 맞붙었다. 논제는 유치원 보조금이었다. 기계가 찬성을, 사람이 반대를 맡았다.

승패는 청중이 가렸다. 토론 전에 찬성하던 청중 79%가 토론 뒤 62%로 줄었다. 반대하던 13%는 30%로 늘었다. 사람이 이겼다.

기계는 자료가 많았다. 친구가 이긴 것은 자료가 더 많아서가 아니었다. 상대의 말을 듣고, 거기에 맞춰 자기 말을 바꿨기 때문이다. 기계는 준비한 말을 했고, 사람은 들은 말에 답했다.

7년 뒤의 아침

그때 바둑을 두던 AI 가 지금은 내 아침 보고를 쓴다. 나는 코딩을 한 줄도 모른다. 그런데 올해 봄부터 AI 에게 말로 일을 시켜 왔다. 공고를 읽는 일, 뉴스를 읽는 일, 만난 사람을 기억하는 일. 전부 말로 만들었다.

그 사이 달라지지 않은 것이 하나 있다. 답은 이제 모자라지 않다. 묻기만 하면 몇 초 안에 온다. 모자란 것은 그 답들 가운데 무엇을 믿을지 고르는 힘이다.

정답이 귀하던 시대에는 정답을 아는 사람이 앞섰다. 정답이 공짜가 된 시대에는 다른 사람이 앞선다. 원하는 것을 한 문장으로 세우는 사람. 상대가 모르는 맥락을 주는 사람. 반대편을 세워 보는 사람. 돌아온 답을 심사하는 사람. 토론장에서는 이것을 훈련이라고 부른다. AI 앞에서는 아직 이름이 없다.

내 판단을 먼저 적는다

올해 외교부의 한-발트 3국 청년 프로그램을 맡으며 면접에서 한 가지를 지켰다. 면접관 둘이 평가 칸을 따로 적는다. 남의 판단을 보기 전에 내 판단을 먼저 적는다. 합의는 그다음이다.

AI 앞에서도 같은 순서를 지킨다. 묻기 전에 내 답을 먼저 떠올린다. 그래야 돌아온 답이 걸러진다. 내 생각이 없으면 어떤 답이 와도 걸러지지 않는다. 그냥 쌓인다.

정답은 끝났다. 남은 것은 대화다. 사람과, 세계와, 그리고 AI 와. 이 자리에 그 대화를 하나씩 적어 가려 한다. 오늘 받은 답 하나에 "반대해 봐"라고 말해 보는 것부터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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